융복합센터 MOOC 강좌: 한류의 원형 한국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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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별신굿은 12세기 중엽(고려)부터 안동 하회마을의 상민(常民)들에 의해 연희(演戱)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 전승되어 성행하게 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탈놀이다. 별신굿이란 ‘별나다’, ‘특별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곧 별난 굿 또는 특별한 큰 굿을 의미하였다. 당시에 이 굿을 못 보면 죽어서 좋은 데로 못 간다고까지 여겨질 정도로 매우 유명한 대축제였다. 그러나 1928년 이래로 중단되고, 탈과 탈놀이만 문화재로 남게 되어 오늘에 이른다. 하회별신굿은 제를 지낸 다음에 여섯 마당의 탈놀이가 진행되는데,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으며, 성공축제로서 명성이 높은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의 기초가 되었다. 이 6개의 마당은 풍자와 해학이 깃들어 있어 오늘날 프랑스 니스카니발, 이탈리아에서 개최되고 있는 비아레지오카니발과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국은 1910년 일제에 강제 합병되면서 국권을 잃고 문화적 자주성을 상실하고 만다. 고종은 민족적 독립성을 일깨우고자 서울의 조선호텔 인근에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천의식을 시도하였으나 일제의 힘을 막아내지는 못하였다. 1945년 광복이 되기까지 36년동안 한국은  암흑의 시간 속으로 침잠된다. 일제강점기 동안 강릉단오제는 중앙시장 상인들을 중심으로 소규모로 명맥을 겨우 잇게 된다.

 

 

 

현대 한국 사회의 축제

1945년 한국은 일제로부터 광복을 되찾고 1950년에 발생한 6.25전쟁을 극복하면서 민간을 중심으로 축제의 기틀을 다시 마련한다. 일제강점기 동안 겨우 명맥을 유지해 오던 강릉단오제가 1967년에 가서야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어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축제로 인정받게 되고 1975년부터 민간단체인 강릉단오제위원회에서 주관하게 되어 민족의 축제로 정착하게 된다.

 

한편, 한반도의 서부에서는 여성을 기리는 축제가 태동한다. 한국에서는 전례가 없던 축제다. 1931년 당시 전국 각지의 명기(名妓) 100여명이 남원에 모여 처음으로 지은 춘향사당에 추모의 제를 올린다. 춘향제는 매년 이어졌는데, 이후 20여년 동안 춘향을 위한 제사만을 지내오다가 20회 때인 1950년부터 축제로서의 면모를 갖춘다. 춘향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춘향선발대회와 명창대회도 이때 시작한다. 이 축제는 한반도 서부를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최근에는 축제의 면모를 일신하여 ‘전시형 축제’에서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직접 참여하는 참여형 축제’로 전환해 호평을 받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은 광한루 오작교에서 청춘남녀와 친구들이 사랑과 우정을 맹세하는 ‘오작교에서 사랑의 언약식’, 세계의 대표적인 사랑 영화를 상영하는 ‘사랑의 영화제’, 금혼과 회혼을 맞은 노인들이 합동 혼례를 올리는 ‘청춘 금회혼식’ 등이 인기를 얻었다.

 

 

1949년에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1주년을 기리면서 국조단군(國祖檀君)에게 이를 알리는 제사의식인 영남예술제로 시작한 개천예술제는 축제의 시각화에 있어 기념비적인 축제다. 이 축제에서는 진주지방 특유의 소싸움놀이와 진주 남강에 수천 개의 등을 띄우는 유등(流燈) 놀이가 유명했는데, 이 유등놀이가 인기가 많아져 축제의 명칭이 진주유등축제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신라문화제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 음력 8월 17일에 황성공원에서 삼한시대의 진한 6부 촌장에게 제를 올리는 행사인 ‘신라제’가 그 기원을 두고 생겨났다. 신라문화의 전통을 이어받고 민족예술의 부흥을 모색한다는 취지하에 종합 문화예술축제로 구상되었다. 1962년부터는 경주시가 주도하여 개최하고 있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이 축제에서는 가장행렬, 민속행렬, 등불행렬, 씨름, 궁술, 농악대회, 백일장, 미술대전, 화랑·원화(源花) 선발대회, 음악공연 등의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종합적인 문화예술의 성격이 강한 축제이다.

신라문화제에 비해 늦었으나 옛 백제 지역에서도 유사한 축제인 백제문화제가 태동하였다. 1955년에 부여에서 백제 말 삼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장군에게 제향을 올리고, 백마강 낙화암에 몸을 던진 삼천 궁녀의 넋을 위로하는 수륙재가 거행되었다. 이 축제는 1966년 제12회부터 백제의 수도인 부여와 공주에서도 동시에 개최되기 시작하였는데, 축제 기간에 백제혼불 채화, 팔충제, 삼충제, 사대왕 추모제, 궁녀제 등 제전행사와 역사 가장행렬, 전통민속행사, 백일장, 음악회, 씨름대회 등의 행사가 진행된다. 특이하게도 이 축제는 올림픽 채화를 본 따 천등산 채화단에서 백제혼불채화를 시작으로 고천제(告天際)를 지내고 점화하여 부여 금성산 성화대로 봉송한다.

전쟁 중이던 1952년 4월 13일. 한국 최초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경남 진해시 북원로터리에 세워지고 군인 장병들이 추모제를 거행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 최대의 벚꽃축제인 군항제가 탄생한다. 진해 군항제는 충무공의 숭고한 구국의 얼을 추모하고 향토문화예술을 진흥하는 본래의 취지를 살린 행사와 더불어 문화예술행사, 관람행사, 팔도풍물시장 등을 아름다운 벚꽃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봄축제로 발전하였다.

이후 1970년대에 들어와 한국은 고도의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전된다. 시간과 공간의 부족, 물질만능과 개인주의를 초래하여 예전의 농촌사회에서 보여주었던 공동체 의식과 전통 민속이 점점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1970년대 이후에는 전통 민속 및 예술차원의 문화제는 다소 축소되거나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유희와 일탈성 차원의 축제가 등장하게 된다. 따라서 과거 근대사회에서 거핸된 전통문화예술축제는 승계하면서도 대부분의 축제는 종합축제로써 한마음 잔치, 대동놀이, 시군구민의 날 등과 같이 운동장에서 거행되는 ‘단합대회 형식의 축제’가 다수 개최된다.

그러던 1995년부터 한국에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는데, 이것을 계기로 지역축제를 통하여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지역주민의 화합을 도모하고자 하는 관(官)의 입장과 도시민들의 레저 수요와 맞물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지역축제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1970년대 21개, 1980년대 42개로 증가하던 지역축제는 1990년대는 222개, 2000년대에는 363개의 지역축제가 신규 탄생할 정도였다.

 

이 시기 한국의 축제는 이전의 축제와는 다른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 축제 소재의 다변화, ▲ 축제 공간의 다변화, ▲ 직접 참여와 체험형의 축제로의 변모다. 1990년대는 한국의 대중예술이 큰 진전을 이루는데 수많은 가수와 밴드, 걸그룹, 보이그룹들이 지역축제 공연의 게스트로 적극 초대되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축제는 대중의 유희와 일탈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대중의 요구에 적극 부응하게 된다.

 

글을 마치며 : 한류의 원천 한국의 축제

한국의 축제는 고조선, 부여 영고, 고구려 동맹, 동예 무천 등 고대 국가에서부터 시작된 제천행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 위에 종교(불교)와 사회문화와 예술이 축제에 포함되었다. 나아가 축제를 통해 문화예술을 발전시킨 원동력으로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대중예술가들이 축제에 적극 참여하고 축제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고, 축제는 다시 대중예술가들의 성장을 위한 자양분을 제공해준다는 측면에서 상호 시너지를 잉태해 나아가고 있다. 한류의 원천은 한국의 축제에 있다.

 

 

참고문헌

서영대(2008), 고조선단군학, 단군학회.

원융희(2003), 세계의 축제문화, 대왕사.

이희성(2015), 축제예술경영론, 대왕사. 

홍경완(2015), 축제 이벤트론, 대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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