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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복합센터 MOOC 강좌: IT 융복합 기업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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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융복합 기업사례-1 동영상 강의보기

앵커 1

IT 융복합 기업사례-2 동영상 강의보기

​제1장 4차 산업 혁명 시대 글로벌 기업

 

 융복합을 활용한 산업에서 성공 조건에는 플랫폼이 있다. 플랫폼은 기차를 처음 만들 때 설계한 정거장과 철로의 폭을 생각하면 된다. 도시와 도시의 연결은 물론 국가 간에도 동일한 기차가 운행되기 위해서는 모든 플랫폼이 동일한 폭과 구조를 가져야 하고, 이것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차도 동일한 폭과 구조를 가져야 한다. 즉 새로운 기술의 융합이 일어나는 기반이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ICT 산업에서 처음 플랫폼화를 이룬 것은 개인용 컴퓨터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인터넷은 표준화를 통해 많은 플랫폼의 핵심 기반이 되었고 이를 통해 전자상거래, SNS 같은 새로운 서비스 플랫폼을 탄생시켰다. 또한 이동통신전화는 초기에 통신서비스 회사에서 각각의 플랫폼을 만들어서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에 통신사가 바뀌거나 해외에서는 부가 서비스가 불가능 했지만 스마트폰으로 진화하면서 진정한 플랫폼이 되었다. 성공한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융합 플랫폼의 중요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1. 기술 융복합과 서비스 플랫폼으로 성공한 애플

 

애플은 1976년 스티브 잡스와 고교 선배인 스티브 위즈니악과 함께 개인용 컴퓨터 사업을 위해 설립되었고, 2019년 기준 세계 시가 총액 1위 기업이다. 설립 당시에는 대형컴퓨터와 중형 컴퓨터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고, 일부 회사에서 개인용 컴퓨터를 위한 기술과 제품을 연구 및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다. 개인용 컴퓨터를 개발하는 회사의 직원인 스티브 잡스에게 스티브 위즈니악이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활용하여 컴퓨터 메인 보드를 설계한 것을 보여주었다. 핵심 기술은 마이크로프로세서인데 모스텍-6502를 활용했다. 이 때 미래에 개인용 컴퓨터를 모든 개인이 사게 될 것으로 확신한 스티브 잡스가 스티브 위즈니악을 설득하여 다니던 개인용 컴퓨터 개발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 집 차고에서 애플을 설립했다. 엔지니어와 사업에 확신을 가진 스티브 잡스가 시너지 효과를 이뤄낸 것이다. 45년이 지나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은 애플의 이야기는 융합적인 창의력의 힘을 잘 보여주고 있다.

초기에 개발한 개인용 컴퓨터 애플I은 메인 보드만 있었는데, 스티브 잡스는 놀라운 영업력을 발휘하여 미래의 가치를 판매했다. 이를 기반으로 다음 모델을 개발할 자금을 확보하여 애플II개발에 성공하여 성장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이후 큰 성공을 거두게 되는 맥켄토시를 개발한다. 창업 5년만에 주식을 공개하고, 10년차에는 직원이 4000명이고 시가 총액이 20억 달러가 되는 큰 기업으로 성장한다. 이런 성공에는 스티브 잡스의 제품 개발 철학인 고객 중심의 아름다운 제품을 위한 융합적인 창의력이 있었다. 그러나 대형 컴퓨터 사업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IBM은 애플의 등장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개인용 컴퓨터를 개발하여 1981년에 처음 출시한다. IBM은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8086와 마이크로소프트 DOS(Disc Operating System) 운영체계를 적용하여 개인용 PC의 대명사가 된 IBM-PC를 탄생시켰다. IBM은 제품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신들의 기술을 다른 회사에도 팔 수 있는 조건을 인정하고 부품을 저가로 공급하게 했다.

이 때 IBM은 강력한 영업 채널과 좋은 제품 명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개인용 컴퓨터의 급속한 확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개인용 컴퓨터 플랫폼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IBM-PC가 성공을 거두면서 개인용 컴퓨터 수요가 늘어나자 HP, DELL, Sony, Toshiba, LG, Samsung 등 많은 회사에서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핵심 플랫폼 기술을 받아서 쉽게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계가 개인용 컴퓨터의 플랫폼이 되었다. 특히 운영체계는 새로운 부가 기능을 개발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여러 회사에서 수많은 보조 기능 프로그램이 개발되면서 컴퓨터의 사용성이 다양해지고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애플은 운영체계를 자사에서 개발하여 사용하고 상대적으로 제품 가격이 높아 판매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회사는 어려운 상황이 되면서 급기야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밀려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1985년 애플에서 밀려난 이후 몇 사람의 동료와 함께 새로운 컴퓨터 회사인 넥스트를 설립한다. 그러나 새롭게 개발한 제품은 판매에 실패하고 회사는 어려워지고 동료들이 떠나는 아픔을 겪는다. 이 때는 이미 저가의 IBM-PC가 개인용 컴퓨터의 플랫폼이 된 상황이라 새로운 도전이 어려워진 것이다. 넥스트는 1986년에 픽사(Pixar)라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 회사를 인수한다. 스티브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를 응용하는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개인용 컴퓨터의 운영체계를 다르게 확보할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 픽사는 3D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 스토리”를 성공시키면서 1995년 주식 공개에 성공하고, 이후 “니모를 찾아서(Finding NEMO)”를 개발하며 큰 성공을 거두고, 2006년에는 유명한 영화사 월트 디즈니에 매각된다. 넥스트는 픽사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 새로운 컴퓨터 운영체계 개발에 매진하게 된다. 1996년 애플사는 컴퓨터 사업에서 많은 적자를 내고 활로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운영체계를 확보하려는 명목으로 넥스트를 인수하고 스티브 잡스는 특임 고문으로 애플에 복귀하게 된다. 1997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CEO가 되고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며 마이크로소프트와 업무 제휴를 맺고 새로운 PC-iMac을 개발하여 1998년 출시한다. 애플의 운영체계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스티브 잡스의 어려운 선택이었고 성공한 전략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새롭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했다. 개인용 컴퓨터 사업에서 1차 성공 후 실패의 교훈은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만들지 못하고 마이크로소프트에 기회가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것을 인지한 스티브 잡스는 당시에 화두로 등장한 “개인용 컴퓨터보다 더 간단한 제품에 운영체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생각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당시 PC용 운영체계를 일부 간단히 만든 윈도우-CE(Consumer Electronics) 운영체계를 판매하고 있었다. 또한 시장에는 1997년 처음 선 보인 “MP3 Player” 가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에서 개발했던 운영체계를 활용하고 자신의 제품 개발 철학을 융합한 새로운 “MP3 Player” 개발을 시작한다. 2001년에 iPod를 미국 전역에 동시 발매하며 큰 성공을 거두고 이후 전세계 시장 점유율 70% 이상이라는 경이적인 성과를 만든다. 이 성공에는 기술 관점에서 운영체계를 확보했다는 것과 고객관점에서 2가지 개선점이 있었다. 초기 제품은 MP3 디지털 음원을 재생장치(MP3 Player)에 디지털 음원을 내려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어렵고 불편했으며 가격도 비싸 불법 내려 받기가 많았다. 애플은 이점을 고려하여 음원을 내려 받는 사이트 “iTunes”를 개설하고 음악 협회와 협상하여 저가로 내려 받기를 할 수 있게 했다. 다른 하나는 이렇게 많은 음원을 저장한 이후 재생 장치 내에서 찾기가 불편함이 있었는데, 운영체계를 이용한 소프트웨어 개발로 사용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기술적인 운영체계, 고객의 사용성, 자신만의 제품 개발철학을 명확히 융합하여 만들어낸 성공 사례라 할 수 있다.

애플이 MP3 Player 사업 성공으로 여유가 생긴 2003년 초에 라이벌인 마이크소프트사는 자신들의 운영체계를 적용한 스마트폰을 개발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당시 휴대폰 업계는 다기능 휴대전화 개발이 전개되고 있었다. MP3 재생 기능, 카메라 내장, 간단한 동영상 내려 받기 및 재생 기능 등의 제품 개발 및 기술 연구 활동이다. 또한 당시 1위 업체인 노키아는 자신들의 스마트폰 운영체계를 확보하려고 심비안(Symbian)을 자회사로 인수하고 제품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다. 또한 휴대 전화 서비스 회사들은 서버를 설치하고 음원, 영상 내려 받기 등 다양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후 상당히 활성화되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이루어지면 휴대폰은 전화기에 컴퓨터를 내장시키는 결과가 된다. 휴대폰은 기능이 다양해지며 가격은 상승하고 수요도 증가하면서 시장이 커지고 사업에 참여하는 업체는 많아져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티브 잡스는 MP3 Player 사업을 넘어서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한다. 통신 전문 업체가 아닌 컴퓨터와 MP3 Player 제조 업체로서 휴대폰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2005년에 본격적으로 스마트폰 개발에 착수하면서 사업을 철수한 통신회사 연구원을 확보하고 iPod에 사용한 운영체계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활용하여 2007년7월에 iPhone1을 출시한다.

동시에 iOS운영체계를 활용한 애플-앱스토어를 공개하여 제3의 회사가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등록하고 수익을 나누는 새로운 서비스 플랫폼을 만든다. 이후 급속도로 응용 프로그램이 등록되고 다양한 기능을 쉽게 내려 받아 사용하게 함으로서 고객들을 놀라게 했다. 새로운 서비스 플랫폼의 효과를 만들어 냈고, 애플 스마트폰은 짧은 기간에 프리미엄 제품으로 자리 매김 한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던 통신사는 더 이상 플랫폼을 운영하지 못하고 중단하게 된다. 이후 마이크로프로세서까지 자체 개발을 추진하여 중요한 핵심 기술을 모두 확보하면서 자신들만의 차별화된 제품을 개발하여 iPhone10까지 경이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애플 스마트폰 사업의 성공 요인은 컴퓨터 및 MP3 Player 사업 성공 경험과 고객의 요구를 찾아내는 융합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 및 꾸준히 축적하고 다듬어 가는 기술 및 서비스 플랫폼이다.

애플은 4차산업혁명시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많은 고객들이 휴대폰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빅데이터를 만들고 있는데 여기에서 무엇을 찾아낼까? 자율주행자동차, 스마트시티 등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제품이나 서비스에는 어떤 결과를 보여줄까? 자신들만의 융합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을 관심있게 지켜볼 것이다.

IT 융복합 기업사례-3 동영상 강의보기

앵커 2

2.컴퓨터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구축한 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1975년 4월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창업하여 개인용 컴퓨터의 운영체계를 플랫폼으로 성공시킨 회사이다. 또한 빌 게이츠가 세계 최대 부호로서 자선 사업을 많이 하고 창업 45만에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난 것으로 유명하다. 애플을 설명하면서 라이벌 회사로 소개했는데,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는 1955년 같은 해에 태어났고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한 인물들이다. 1971년 인텔이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한 영향으로 개인용 컴퓨터의 미래를 예측하여 창업을 결심하고 애플은 하드웨어와 서비스 플랫폼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계 및 응용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며 앞서고 뒤서고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구조를 이해하고 반드시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필요할 것을 예상하였다. 응용 소프트웨어의 구성에 따라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운영체계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기능을 수행한다는 원리이다. 여러 업체에서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컴퓨터 동작 구조와 동일한 개발 장비가 필요한데 이들은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운영체계를 함께 표준 방식으로 구성하여야 하며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처음 만든 운영체계가 DOS(Disc Operating System) 버전인데, 컴퓨터에 사용하는 메모리가 플로피 디스크 형태인 것을 고려하여 만든 이름이다. IBM-PC에 운영체계로 채택되면서 개인용 컴퓨터 표준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후 컴퓨터 메모리는 하드디스크를 거쳐 반도체 메모리 SSD (Solid State Device)까지 발전했고 이에 따라 컴퓨터 운영체계도 발전을 거듭했다. 운영체계의 2번째 버전은 1985년 탄생한 윈도우(Windows) 시리즈이다. 컴퓨터 화면인 윈도우에 그래픽 아이콘을 만들고 마우스를 이용하여 눌러주면 동작하는 방식이다. 윈도우 방식은 애플 컴퓨터가 먼저 사용하고 있어 논란이 생기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계속 발전하고 있다. 윈도우 시리즈는 16비트 컴퓨터 이후 개발된 32비트 컴퓨터 등에 맞게 새롭게 개발된 마이크로프로세서 버전에 맞추어 성능과 동작 속도를 고려한 운영체계로 다양화되었고 이후에도 컴퓨터 하드웨어 발전에 맞추어 계속 진화하였다. 향후에도 여러 개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사용한 컴퓨터 등 계속 진화하는 것에 맞추어 운영체계도 진화를 계속하며 플랫폼 역할을 할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계 제공에만 만족하지 않고 다른 기능을 제공하는 응용 프로그램 개발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오피스 소프트웨어인데 전자 문서를 만드는 기능을 제공하는 워드 프로세서 (Word Processor), 숫자로 된 데이터를 파일에 입력하고 수학적 계산 및 그래프로 표현이 가능하게 하는 엑셀(Excel Sheet) 및 프레젠테이션 기능을 제공하는 문서 작성기 파워포인트(Power Point)가 있다.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소프트웨어로 문서 작성의 표준화에 크게 기여하고 인터넷 검색이나 정보 공유 확대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향후에는 세계화가 더욱 가속될 것으로 보여 이미 문서 작성에 표준을 차지하고 있는 상태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보급이 확대되면서 사이트 검색 기능을 위한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이 뜨거운 경쟁을 통해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장을 점령한 사례가 있다. 1991년에 팀 버너스 리(Tim Berners Lee)가 인터넷으로 연결된 컴퓨터 통신 네트워크를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연결되었다는 의미로 웹(Web)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면서 WWW (World Wide Web)을 창안했다. 처음에는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고 했으나 기술을 공개하면서 누구나 검색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개념을 이용할 수 있게 했고 지금까지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인터넷 브라우져(Browser) 혹은 웹(Web) 브라우져라는 이름으로 소프트웨어가 개발되기 시작했고, 1992년 유닉스 운영체계 기반으로 개발된 브라우져(Browser)가 선보였다. 이후 1994년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 회사에서 개발한 넷스케이프(Netscape) 브라우져가 상업적으로 성공하며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를 개발하여 대응을 했다. 초기에는 운영체계 소프트웨어와 함께 결합 상품으로 판매를 시도했으나 불공정 거래로 판정을 받아 중단한다. 그렇지만 이후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고 개선 작업을 할 때 소프트웨어 개발은 플랫폼인 운영체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는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앞서 나갈 수 있었다, 결국 넷스케이프는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2008년에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성장한 마이크로소프트는 클라우드 서비스 및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개발 등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면서 확장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도 스마트폰 운영체계 개발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나 실패한 것과 같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닐 것이며,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사고를 통해 고객의 요구 사항에 맞는 서비스를 창조할 때 지속 가능할 것이다.

IT 융복합 기업사례-4 동영상 강의보기

앵커 3

3. 새로운 검색 플랫폼을 창출한 구글

 

구글은 1998년9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설립되었고, 정보 검색 응용 프로그램 혁신을 통해 성장한 기업이다. 인터넷 관련 컴퓨터 응용 프로그램은 먼저 브라우저라는 것으로 다른 컴퓨터를 찾아갈 수 있는 가능이다. 그러나 다른 컴퓨터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알고 인터넷 주소가 무엇인지 알아야 원하는 것을 찾는 것이 가능했으며 어떤 내용이 있는지 알지 못하면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이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컴퓨터 사이트가 등장했는데 포털 서비스 사이트(Portal Service Site)다. 주요한 컴퓨터와 연결하고자 할 때 이름만 누르면 연결해주는 기능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원하는 내용이 있을 때 어떤 사이트에서나 정보만 쉽게 찾고자 하는 요구가 많아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정보 검색 프로그램이다. 포털 서비스 회사는 홈페이지에 주요 사이트를 바로 연결할 수 있는 링크를 만들어주는 것과 동시에 정보 내용을 검색하는 검색창을 추가해서 서비스를 하기 시작했다. 정보 검색이 가능해지면서 상업적인 활용도가 높아졌다. 예를 들면 맛있는 음식점을 찾을 때 어떤 식당을 보여줄지는 정보 검색 프로그램이 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정보 검색은 본질의 좋은 정보를 알고 싶어하는 요구와 다르게 상업적인 역할이 더 커지고 있었다.

스텐퍼드(Stanford) 대학 박사과정에서 인터넷 검색 기술을 연구하던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은 인터넷 검색 기능이 상업성에서 벗어나 원하는 정보를 정확하게 찾게 해줄까? 연구하고 있었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그들은 실리콘밸리 어느 차고에서 창업했고 그들이 연구한 새로운 검색 알고리듬 (Algorithm)을 적용한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기존의 포털 사이트와 차별화된 전략으로 홈페이지에 오직 회사 이름과 검색 창 이외에는 깨끗한 화면으로 만들었다. 검색 결과도 상업성을 배재하고 많은 사람이 검색하는 정보가 먼저 나오게 했다. 또한 회사 비용으로 공공 도서관 등 자료가 많은 곳의 정보가 검색이 가능하도록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는 일을 병행하여 고객이 빠르고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게 했다. 좋은 검색 기술이라고 창업에 투자를 했던 사람들도 초기에 비용만 많이 쓰고 상업성을 배제하는 것에 불만이 생기고 수익 창출 대책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초기 취지에 맞추어 검색은 본질대로 정확한 정보를 검색하게 하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 고객 활동 정보를 활용해 광고주에게 맞춤 정보를 주는 방식으로 수익 창출을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구글의 검색 기능은 고객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했고 많은 검색이 이루어졌다. 이 정보를 이용한 광고 방식이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된 광고 회사도 많아지면서 구글은 수익을 창출하게 되었다. 고객의 개인 정보인 활동 내용을 무단으로 사용한다는 문제가 생겼지만 개인 정보 노출보다 공익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인식한 미국 정부는 합법으로 인정해 주었고 중국을 제외한 선 세계적으로 인정되면서 확산되었다. 창업 3년째 수익을 만들어 낼 만큼 명확한 목표와 철학으로 꾸준히 노력한 결과 이후 검색의 대명사가 되었고 검색한다는 것은 구글링(Googling)한다는 말로 바뀌었다. 또한 많은 수익을 창출하며 새로운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원천이 되었다.

 

구글은 융복합 사고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한다. 유튜브(YouTube)를 인수한 것이 그것이다. 유튜브는 2005년2월 인터넷 보안 기술로 성공한 페이팔(Paypal)의 직원이던 채드 헐리를 비롯한 3명이 설립한 회사다. 이들의 아이디어는 사진을 공유할 수 있으니 동영상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를 알게 된 구글은 미래에는 동영상 정보가 많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보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2006년 10월 구글은 미래의 가치를 반영하여 16억불의 큰 금액을 투자하여 인수한다. 이후 유튜브 서버를 확대하여 누구나 쉽게 동영상 자료를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자신들의 장점인 검색 기능을 통합하여 보고 싶은 동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하고 검색어와 관련된 자료들은 함께 볼 수 있도록 순서를 정해 보여준다. 또한 동영상 자료에 광고를 추가할 수 있게 하여 시청자와 광고주가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수익을 창출하고 동영상 제공자와 일정 비율로 나누게 했다. 이로 인해 지금은 광고 수익을 얻으려는 많은 유튜버(Youtuber)가 생겨나고 있으며 스스로 시청자를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즉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여 구글의 수익을 높여주는 구조를 만들었다.

 

구글이 인터넷 세상에서 승승 장구하고 있는 2007년 7월에 애플이 스마트폰을 출시한다. 구글은 엄청난 위기를 느낀다. 컴퓨터를 활용해 검색 기능을 제공하는 구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들은 달랐다. 구글은 컴퓨터에서 인텔처럼 하드웨어 플랫폼이나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없고, 엄청나게 인기있는 검색 엔진 응용 소프트웨어만 가지고 있다.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응용 프로그램이 동작하는 컴퓨터가 스마트폰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들의 소프트웨어가 동작되는 기기나 플랫폼이 제한된다. 스마트폰은 향후 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새로운 플랫폼이 될 것이고 애플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모두 갖게 되는 무서운 경쟁 상대로 인식한 것이다. 그런데 때 마침 스마트폰용 운영체제를 개발하여 판매하기를 원하는 회사가 있었는데 안드로이드였고, 구글은 이 회사를 인수했다. 구글은 스마트폰 운영체제 시장에 큰 변화를 만드는데 무료로 기술을 무료로 공개하여 운영체계가 상품인 마이크로소프트가 유료 판매에 어려움을 갖게 했다. 무료로 배포하는 대가는 구글 검색 프로그램과 구글 서비스를 함께 묶어서 제공하고 안드로이드 운영체계 기술만 공개하며 제품에 적용할 때 반드시 구글에 승인을 받도록 했다. 그러면 다른 앱 개발자들은 안드로이드 운영체계를 이용한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게 되고 안드로이드 앱 스토어가 성장하게 된다. 이것은 구글에게는 엄청난 기회지만 이를 이용하는 스마트폰 회사는 애플처럼 기술 플랫폼을 확보하기 못한다. 구글은 가장 먼저 휴대폰 1위 기업인 노키아에게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활용하여 스마트폰 개발을 요청했다. 그러나 노키아는 이를 거절하고 자신들이 주도하여 새로운 운영체제를 만들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하고 스마트폰 시장에서 퇴출되고 만다. 구글은 삼성에 요청했고 이를 활용한 삼성은 빠른 속도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성장하게 된다. 뒤이어 LG전자를 비롯한 중국 업체들이 구글 안드로이드를 활용하여 스마트폰을 개발하면서, 시장을 80% 정도 장악하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구글은 자신들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무료 운영체제를 공급했고, 그로 인해 폭발적인 융합 현상이 일어나 스마트폰 시장의 운영체제를 지배하게 된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융합이 일어나는 방향과 시기를 잘 이해하고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글은 무료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통해 자신들의 기술은 보호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수많은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는 플랫폼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구글은 새로운 진화 방향으로 인공지능을 선택했다. 2014년 구글은 5억불을 투자하여 2010년 영국에서 인지신경과학자인 데미스 허사비스 (Demis Hassabis) 등이 설립한 인공지능 회사 딥 마인드 테크놀로지(Deep Mind Technology)를 인수하여 구글 딥마인드로 변경하여 자회사를 만들었다.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범용 학습 알고리듬을 만들어 기후 문제, 질병 퇴치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2016년3월에는 딥 러닝 방식 인공 지능 바둑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한국의 최고 기사인 이세돌과 대국하여 4승 1패를 만들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는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후에는 더 이상을 패하지 않았다. 딥 러닝 방식은 기존의 인공지능 알고리듬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이나 공식을 알려주지 않고 기존의 많은 데이터를 보여주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알고리듬을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데이터를 많이 볼수록 알고리듬이 정교해지고 성장하는 방식이다. 바둑을 예를 들어 보면 백만 건 이상의 바둑 대국 데이터 분석하는 것이 기계는 잚은 시간에 가능한데 사람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렇게 향후 인공 지능은 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측하는 것은 사람보다 우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래서 미래에 새로운 인공지능이 우리 삶을 개선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이유다.

제2장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한국 기업

 

1. 선택과 집중으로 성공한 삼성전자

 

1969년 삼성 창업자 이병철회장은 고심 끝에 전자 산업에 참여를 결정한다. 그 당시 미국, 유럽, 일본은 물론 한국에 LG전자 등 많은 전자 회사가 있었다. 국제 무역업을 담당하는 삼성물산과 섬유 산업으로 성공한 제일 모직을 기반으로 성장한 삼성 그룹은 전자 산업을 새로운 미래 산업으로 결정하고 당시에 주요 제품을 하나씩 개발하면서 자리를 잡아갔다.

 

지금은 세계 최대 종합 전자 회사로 성장했는데 몇 가지 선택과 집중 전략의 성공으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첫번째는 반도체 산업에 참여한 것이다.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여 반도체 제품 개발을 시작하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오랜 검토 끝에 1983년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하겠다는 선언을 하게 된다. 당시 메모리는 미국, 유럽 및 일본 선진 기업만 기술을 개발하고 있을 정도로 첨단 산업이었다. 인재 확보의 필요성을 인식한 삼성은 미국 기업이나 학계에 있는 한국 사람을 대상으로 고액 연봉을 지불하며 영입하고 본격적으로 64K DRAM 개발을 시작한다. 불철주야 개발에 전념하여 6개월만에 성공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다. 거액이 투입되는 공장 건설을 과감히 결정하고 생산을 시작한다. 급기야 1984년에는 메모리 반도체의 과잉 공급으로 가격이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삼성은 반도체 사업에서 2000억 이상의 적자를 기록한다. 1985년에는 미국과 일본이 협상을 통해 반도체 가격 폭락을 막기 위한 대책을 합의하게 되고 메모리 가격은 안정되기 시작한다. 이 때 삼성은 새로운 메모리 공장을 추가로 건설하는 결정을 한다. 기존의 많은 적자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공장 건설에 많은 돈을 집중해야 하는 삼성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986년에는 상황이 반전된다. 개인용 컴퓨터의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메모리 수요가 많아지며 단가도 올라갔다. 큰 이익을 남긴 삼성은 더욱 집중하여 생산 공장을 증설하고 새로운 제품 개발에 집중한다. 1992년에는 DRAM 생산 세계 1위를 달성하고, 휴대폰에 사용되며 DRAM과 함께 새로운 메모리로 수요가 커지고 있는 플래시 메모리 개발도 진행한다. 메모리 신기술 개발에 더욱 매진하여 1994년에는 256M DRAM 개발에서 세계 1등을 하며 명실상부 메모리 1등 회사로 성장하게 된다. 이후에도 메모리 시장은 생산 기술과 시설이 첨단화 되면서 생산이 급증했지만 신규 생산 공장 증설에는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메모리 수요 측면에서는 컴퓨터, 스마트폰 및 인터넷 네트워크 서버 등에서 급격하게 늘어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 때는 재고 확보를 위한 여분의 수요까지 생기면서 가격은 급등한다.  이 때 반도체 회사는 경쟁적으로 큰 금액을 투자하여 새로운 공장을 건립하게 되고 공급이 많이 늘어난다. 그러면 공급 증가에 힘 입어 단가는 내려가지 시작하고 재고 조정을 위해 수요까지 줄어들면서 단가는 더욱 떨어지는 상황이 된다. 메모리 가격의 급등락이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삼성전자는 꾸준한 기술 개발과 선행 투자를 통해 확고히 메모리 사장의 선두 주자로 자리 매김할 수 있었다. 지금은 메모리를 넘어 시스템 반도체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있고 2030년에는 시스템 반도체 1위 달성을 목표로 매진 중이다.

 

반도체 사업의 성공과 함께 두번째 선택과 집중으로 이어간 것은 평면 TV 사업이다. 초기 브라운관을 사용하던 시기에 TV 사업을 시작했지만 큰 성공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등장과 함께 TV 사업은 큰 전기를 맞는다. 디지털 기술은 반도체 부품 기술과 반도체 기술을 이용한 평면 디스플레이가 주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삼성전자는 2000년대 초반부터 TV용 디지털 반도체 부품과 평면 디스플레이 개발 및 생산 시설에 과감한 투자를 집중한다. 평면 액정 디스플레이(LCD: Liquid Crystal Display) 및 유기발광(OLED: Organic Light Emitting Diode) 디스플레이는 대형 유리판에 반도체 부품을 만들고 일부 화학 물질을 이용하는 기술이다. 한국 기업들이 초기부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반도체 기술과 화학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06년부터 세계 TV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른 뒤 2019년까지 14년간 정상을 지키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기업들이 평면 액정 디플레이와 LCD TV 제품을 저가로 공급하면서 시장을 확대하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QLED 등 새로운 첨단 기술로 만든 프리미엄 제품으로 시장을 지키고 있다.

 

세번째 선택과 집중으로 성공을 이어간 것이 휴대폰 사업이다. 1세대 이동통신 제품부터 개발을 시작하였지만 미국 모토로라의 아성을 넘지 못했고 디지털 기술로 2세대 기술이 시작되면서 선택과 집중으로 급속도로 성장을 시작한다. 2세대 이동전화 기술은 유럽에서 시작된 GSM(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s) 방식과 이후 미국에서 주도한 CDMA (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방식으로 구분된다. GSM 기술을 주도한 노키아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전세계에 널리 보급하려는 전략으로 핵심 기술로 개발한 부품을 여러 반도체 부품 업체가 생산 판매하도록 했다. 삼성전자는 GSM 부품을 활용한 휴대폰 제품 개발과 기술 확보를 위해 반도체 부품 개발을 함께 추진하며 성공적으로 사업을 발전시켰다. 또한 CDMA 방식을 주도한 것은 미국의 컬컴인데 부품을 공급하고 제품을 개발하는 회사로부터 기술 로열티도 받게 되어 제품 단가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한국에서는 CDMA 방식을 국가 표준으로 결정하고 한국전자연구원을 중심으로 민간 기업이 함께 참여하여 이동통신시스템과 휴대전화기 개발을 완성하고 세계 최초로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한국 기업은 경험을 살려 미국 시장에서도 제품 공급을 선도해 나간다. 삼성전자는 GSM과 함께 CDMA 단말기 개발에도 집중하여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성하게 된다. 2세대 이동통신 전화기 시대에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 삼성전자는 집중적으로 기술 개발에 투자하여 3세대 기술이 시작될 때는 더욱 확대해 나간다. 3세대에는 여전히 두 가지 표준 규격이 존재하는데 GSM 방식은 WCDMA라는 방식을 채택하고 CDMA는 CDMA-EVDO라는 방식을 채택하는데 기본 기술은 CDMA 기술을 확장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기업들은 CDMA 기술을 확보하고 있어 3세대에는 더욱 유리한 상황이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이동통신 전화기에 여러 가지 부가 기능을 추가하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은 MP3 Player 기능, 카메라 기능, 동영상 서비스 기능, TV 수신 기능 등을 빠르게 통합하면서 시장점유율을 계속 확대하게 되었다. 3세대 서비스가 일반화되고 휴대폰 기능이 점점 고급화되는 2007년 7월에 애플이 스마트폰을 출시하게 된다. 이 때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을 개발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계 및 노키아가 주도하는 심비안 운영체계를 이용한 제품 개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인수하고 스마트폰 운영체계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삼성은 기존에 진행하던 개발을 진행하면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개발에도 착수하여 최초로 출시하게 된다. 엄청난 개발 인력을 투입하며 총력을 기울인 결과 스마트폰 시장에서 판매량을 확대하여 1위를 차지하게 된다. 또한 자체적으로 스마트폰 운영체계를 확보하려는 노력도 많이 하지만 결국에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이 통합된다. 이후 기술이 4세대인 LTE(Long Term Evolution)으로 진화할 때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기술을 개발하여 상용 서비스를 주도하게 된다. 결국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노키아는 몰락하고 삼성전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폰은 판매하는 회사가 되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애플이 자사 운영체계와 애플 앱 스토어를 이용하여 프리미엄 제품 이미지를 만들며 평균 판가를 2배 이상 높게 받으며 엄청난 이익을 남기는데 비해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 운영체계를 이용하며 치열한 경쟁으로 이익 금액이 크지 않은 아픔이 있다. 그렇지만 최근에 삼성전자는 자사의 디스플레이 기술을 이용하여 OLED 스마트폰으로 혁신적인 디자인과 사용성을 제공하며 프리미엄 제품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다.

 

제3장 결어

 

반도체, TV, 이동전화기 및 시스템, 가전 제품까지 종합 전자 회사로 성장한 삼성전자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전기 자동차 부품 산업 및 인공 지능 등 새로운 분야 확대를 위해 노력 중이다. 선진 업체들이 주로 해오던 신기술 확보를 위한 방법인 미래 기술 업체를 인수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개척한 저력을 어떤 분야로 확대할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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